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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랜드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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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7 ==== 새벽, 폭풍은 여전했다. 밤새 구축함들의 뇌격은 단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다섯 척의 사냥개들이 밤새 앗아간 것은 보탄(KMS Wotan) 승조원들의 마지막 남은 잠과 기력이었다. 닷새째 이어진 전투 배치, 세 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대공·대수상 경보 속에서 병사들은 포좌와 통로 바닥에 쓰러진 채 짧은 혼절과 각성을 반복했고, 함내에는 구조도 탈출도 없으리라는 체념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새벽녘 함내 방송으로 전해진 소식, 즉 뤼첸스와 주요 장교들에 대한 기사철십자장 서훈 결정은 사기 진작을 위한 본국의 배려였으나, 한 생존자의 회고대로 그것은 "장례식의 조사처럼" 들렸다. 07시를 넘기며 비가 걷히기 시작했고, 시계가 열린 북서쪽 수평선 위로 두 개의 거대한 마스트가 떠올랐다. [[알렉스 베렌하르트]]의 리버티(RNS Liberty)와 아이언사이드(RNS Ironside)였다. 베렌하르트는 밤사이 참모들의 야간 교전 건의를 물리치고 새벽까지 대기를 명령해 둔 터였다. "그 배는 이제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우리는 밝은 곳에서, 확실하게 끝낸다." 08시 47분, 아이언사이드의 16인치 주포가 먼저 포문을 열었고 1분 뒤 리버티가 뒤를 이었다. 보탄도 즉각 응사에 나서, 세 번째 일제사가 아이언사이드의 함수 양옆에 물기둥을 세우는 등 초반의 포술은 죽어가는 함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그러나 조타 불능의 함체는 파도가 미는 대로 흔들리는 사격 플랫폼이었고, 반대로 루이나 전함들은 자유롭게 침로를 골라 T자를 그으며 다가왔다. 09시 02분, 아이언사이드의 16인치탄 1발이 보탄의 전부 함교 구조물을 직격해 사령탑과 전방 사격 통제소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귄터 뤼첸스]]의 전사 시점에 대한 통설이 바로 이 명중탄으로, 이후 보탄에서는 함대 사령부 명의의 어떠한 명령도 발신되지 않았다. 같은 시각을 전후해 전부 주포탑 2기가 연달아 침묵했고, 개전 21분 만에 보탄의 조직적인 포격은 사실상 끝났다. 그 뒤에 이어진 것은 해전이라기보다 처형에 가까웠다. 거리를 좁힌 두 전함은 직사에 가까운 근거리에서 일제사를 퍼부었고, 페어헤이븐(RNS Fairhaven)과 스톤헤이븐(RNS Stonehaven)도 양 옆에서 포격에 가담했다. 400발에 가까운 대구경탄이 보탄의 상부 구조물을 차례로 갈아엎었다. 마스트가 꺾이고 굴뚝이 무너졌으며, 포탑들은 하나씩 포신을 늘어뜨린 채 불탔다. 그러나 수선 하부의 방어 구획은 끝까지 버텨, 만신창이가 된 함체는 여전히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0시를 넘기며 리버티와 아이언사이드는 연료 부족으로 더는 해역에 머물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고, 베렌하르트는 포격 중지와 본대 귀환을 명령하며 마무리를 순양함에 맡겼다. 10시 25분, 스톤헤이븐이 근거리에서 어뢰 3발을 차례로 보탄의 양현에 꽂았다. 거의 같은 시각 함내에서는 생존 장교들의 지시로 자침용 폭약이 터지고 킹스턴 밸브가 열리고 있었다. 10시 39분, 보탄은 좌현으로 천천히 넘어가더니 함미부터 바다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미의 군함기는 내려지지 않았고, 기울어 가는 갑판 위에서 생존자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광경을 루이나 승조원들은 포성이 멎은 침묵 속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쪽이 침몰의 결정타였는가, 즉 어뢰인가 자침인가를 두고는 전후 수십 년간 논쟁이 이어졌으나, 훗날 심해 탐사로 확인된 선체 상태는 양쪽 모두에 근거를 주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배는 승조원들이 끝까지 싸운 뒤에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침몰 해역의 바다에는 수백 명의 생존자가 떠 있었다. 스톤헤이븐과 구축함 1척이 접근해 현측에 밧줄을 내렸고, 기름과 파도 속에서 한 명씩 끌어올리는 구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10명째를 끌어올리던 무렵, 견시가 근거리에서 잠망경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보고했다. 전날부터 해역으로 전개 중이던 유보트들의 존재는 첩보로 확인된 상태였고, 정지한 순양함은 잠수함 앞에서 표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함장은 해군에서 가장 무거운 종류의 결단을 내렸다. 구조 중단, 즉시 이탈. 밧줄을 붙든 채 끌려가다 떨어져 나가는 생존자들을 뒤로하고 스톤헤이븐은 속력을 올렸다. 바다에 남겨진 이들 중 이후 독일 측 함정과 기상관측선이 추가로 건져낸 것은 5명뿐이었다. 보탄의 승조원 2,200여 명 중 최종 생존자는 115명. 리퍼블릭의 1,419명 위에 이번에는 2,000명이 얹힌 것이다. 구조 중단의 결정은 전후까지 논쟁거리로 남았으나, 리퍼블릭의 생존자가 3명이었던 전쟁에서 그 함장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소식이 전해진 그날, 루이나 의회는 회기를 중단하고 베렌하르트의 전문 전문(全文)을 낭독했다. "1941년 5월 27일 10시 39분, 함대는 약속을 지켰다." 사흘 전 "귀항하지 않는다"던 그 전문의 대구였다. 거리에는 호외가 뿌려졌고, 리퍼블릭 승조원 유족들이 항구에 모여 바다를 향해 헌화하는 사진이 이튿날 모든 신문의 1면을 채웠다. 그러나 축포의 이면에서 해군 수뇌부의 결산은 훨씬 건조했다. 최신예 전함 하나를 잡기 위해 동원된 것은 주력함 7척과 항모 2척, 순양함과 구축함 수십 척, 그리고 나흘의 시간이었다. 그 나흘 동안 호위를 뜯긴 선단들이 대서양 곳곳에서 무방비로 항해했다는 사실, 그리고 결정타가 전함의 주포가 아니라 시속 130km 복엽기의 어뢰 한 발이었다는 사실은 각기 다른 방향의 교훈을 남겼다. 어쨌든 하나의 시대가 이날 끝났다. 독일의 대형 수상함이 호위 없이 대양을 활보하던 시대, 그리고 '위치 불명의 전함'이라는 세 글자가 루이나를 마비시키던 시대였다. 다만 그 관에 마지막 못이 박히기까지는, 아직 반년의 소모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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